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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프랑스

by 베니스상인 2024. 3. 2.



프랑스 사람들은 토론 좋아함
논쟁
혁명가
데카르트 영향
경험보다 이성중시 - 영구히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 탐구, 합리주의 ㅌ철학 -> 계몽사상 -> 프랑스 혁명 -> 에스프리
프랑스인 국민성
에스프리 - 강한 개성과 자기주장
사메세갈 - 다른 것에 관심없음
프랑스 다양한 요리법 - 여러가지 채소 해산물등
고급 포도주를 사용한 요리> 오븐에 구운 요리>기름에 볶은 요리 > 냄비에 끓인 요리
양념, 소스 문화

식사 순서
1. 전채(에피타이저)
2. 본식(고기나 생선)
3. 치즈
4. 후식

여유롭게 식사하고 즐기는 것을 좋아함

프랑스 포도주는 최고 맛 색 향
눕혀서 보관해야

프랑스가 고급요리로 유명해진 것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갈곳을 잃은 고급궁중요리사들이 식당으로 나와 전파하면서
앵겔지수 높음

마리 앙투아 카렘 - 조리법 및 식사 예절을 기록으로 남김
프랑스는 백년전쟁후 부터 일요일마다 닭고기를 먹는 전통있음 앙리 4세, 쉴리 경제장관

유럽페권
그리스 -> 로마 -> 프랑크 왕국, 신성로마제국, 영국 -> 에스파냐 ->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674,843제곱킬로미터 한반도 3배
6500만명
다민족 국가 - 유럽계 혈통 91퍼센트

그리스 로마제국 (중앙집권) -> 왕건약화 -> 지방영주 권한 높움(봉건제) -> 왕권강화를 위한 전쟁 필요(군대, 세금) -> 중앙집권화,  영주가 왕에게 충성하는 신하로

1337~ 1453 백년전쟁, 복잡한 유럽 황실 사이의 영국과 프랑스 영토 전쟁

프랑스 역사

476 서로마 멺망
800 로마 황제 즉워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제(샤를 마뉴)
843 프랑크 왕국 셋으로 분열(3손자) 베르됭 조약
- 서프랑크: 카를(막내) 프랑스
- 중프랑크: 로타르1세(장남) 이탈리아
- 동프랑크: 루트비히(차남) 도이치

프랑크 동쪽 부르고뉴 지역은 샤를 2세의 조카들이 차지

서로마제국 멸망후 프랑크 왕국이 로마황제 정통성 이어받음 -> 신성로마제국 황제 -> 로타르 1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로마 카톨릭)
- 막시밀리안 1세(1459~1519)+ 부르고뉴 대공녀 마리아(1457~1482) -> 프랑스 부르봉 지역
- 필리프(1478~1506)(막시밀리아 아들) + 에스파냐 공주 후아나(1479~1555)(이사벨 여왕 + 페르난도2세) -> 아들 카를(1500~1558)이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1세 + 오스트리아 카를 5세 +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동생 페르난디드 1세(1503~1564) 오스트리아 왕 +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 아들 펠리페 2세(1527~1598) 에스파냐와 신대륙식민지 통치

 

카를 5세 이후 동생 페르디난트 1세가 황제 정통성을 이어 받음


프랑스 개신교 -> 앙리 4세(1553~1610) 낭트칙령 1598 종교의 자유 인정 -> 루이 14세 카톨릭 지지 개신교 탄압(1685)

1618년 ~1648년 30년 전쟁 오스트리아 왕가의 카톨릭 국가와 개신교 국가 연합, 프랑스는 이때 중립, 프랑스의 개신교 연합 참전으로 전쟁 마무리 -> 베스트팔렌 조약 성립됨

 

베스트팔렌 조약

  • 합스부르크 왕가의 알자스 지방을 획득
  • 라인 강을 경계로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세력권의 국경 확보
  • 에스파냐 식민지였던 네덜란드 독립
  • 스위스의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독립
  • 도이치 주변 국가들이 프랑스와 자유롭게 동맹 맺음
  •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 분리

 

마자랭(1602~1661): 프랑스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이끔, 루이 14세 전까지 프랑스 총리

 

루이 14세: 태양왕, 절대왕정, 부르봉 왕가, 군사적으로 유럽에서 우월, 침략적이고 공격적인 정복 정책,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황제 겸한 합스부르크와 경쟁 치열 -> 에스파냐 왕위계승 전쟁(1701~1714)

 

에스파냐 왕위계승 전쟁(1701~1714)

  • 에스파냐는 합스부르크 왕실 카를로스 2세가 숨지면서 혈통이 끊어짐 -> 펠리 프5세 후계자 지명(루이 14세와 에스파냐 공주 마리아 테레지아 손자) -> 프랑스를 의식한 영국과 네덜란드가 반대 -> 프랑스(에스파냐 헝가리 ...)와 오스트리아 + 동맹국의 전쟁(영국 네덜란드 포함, 신성로마제국, 샤보이 공국, 프로이센, 포르투갈) -> 10년간 전쟁후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 , 1714년 라슈타트 조약 체결 

 

라슈타트 조약

  • 에스파냐는 프랑스와 동맹 맺을 수 없음
  • 프랑스 왕은 에스파냐 왕을 겸할 수 없음

루이 14세 사망후 프로이센과 영국이 유럽에서 무서운 세력으로 성장->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1740)이 일어남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 카를 6세이후 후계자 끊어짐 ->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1717~1780) 이어받음 ->  여자가 정통성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 프로이센이 강력하게 반대(살라카법 위반) -> 오스트리아를 적으로 여긴 프랑스가 프로이센 편, 에스파냐도 프랑스 곁으로 ->  영국은 오스트리아 편, 러시아도 -> 프로이센 승리
  • 프로이센의 유럽 세력이 커짐
  • 프로이센을 상대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동맹, 그리고 러시아와 스웨덴 합류, 프랑스 경쟁자인 영국이 프로이센에 합류 -> 프로이센의 승리로 주도권 빼앗음 (7년 전쟁, 1756~1763)
  • 당시 영국은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군과 캐나다 식민지 주도권으로 전쟁, 영국 승리로 캐나다 차지
  • 인도에서도 영국이 프랑스 물리치고 인도 지배권 차지 -> 대영제국 기틀 마련
  • 이후 오스트리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프랑스 황태자 루이 16세(1754~1793)가 결혼하여 두 왕가가 서로 동맹함 -> 이 둘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공화정이 세워지면서 사형됨
  • 프랑스 혁명 세력을 뒤업기 위해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등이 프랑스와 전쟁
  • 1799년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이념 전파를 내세워 유럽 대륙을 침략,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격파, 신성로마제국 멸망(1806)
  • 신성로마제국의 멸망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도이치 민족 지배도 막을 내리고 프랑스 오스트리아 적대관계도 끝이남
  • 이후 루이 18세가 왕위에 오르고 다시 부르봉 왕조가 부활되면서 혁명이전으로 돌아감
  • 1871년 보불(프랑스 프로이센) 전쟁으로 프랑스 패배 

 

프랑스 대혁명

  • 유럽최초의 시민혁명은 네덜란드 독립 전쟁(1568~1648), 에스파냐 지배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위한 시민들의 봉기, 중산층의 시민들이 압제자로부터 이루어진 혁명
  • 미국 독립전쟁(1775~1783)은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신대륙으로 건너온 평등한 시민들이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으킨 독립전쟁
  • 프랑스 시민혁명은 지배계급으로부터 시민들의 평등한 권리와 자유를 위한 민주주의를 목적으로 한 혁명임이 다른 혁명과 다른 것임
  • 프랑스는 지방 영주 세력 기반의 봉건 주의에서 백년 전쟁을 거치면서 왕권이 강화되고 왕을 중심으로 한 귀족 중심의 계급사회로 발전하게 됨, 루이14세 때는 로마카톨릭의 성직자 계급과 귀족 두 계급이 존재했음, 그리고 평민이지만 의사 법률가 은행가와 같은 제 3계급이 있었고 이들은 출세를 위해 많은 공부를 하던지 또는 돈이 많은 부유한 사람들이었음
  • 성 밖에는 농부 일꾼등 평민이 살고, 성안에는 영주와 귀족일을 돕는 제 3계급들이 영주 저택 근처에 모여 살았음
  • 계급의 사치 향락이 극심했고 백성들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며 살았음, 전쟁을 할수록 백성들의 고통은 심해짐
  • 당시 백성들은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음, 한번도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본적이 없고 왕가의 혈통으로 왕위가 이어져 왔음
  • 제 3계급들이 차츰 머리에 지식이 많아지고 생각이 깨이면서 스스로 묻기 시작함, 귀족으로 태어난 것과 평민으로 태어난 것의 차이뿐 그로인해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은 불평등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고쳐야 한다.
  • 루소(1712~1778) 인간의 깨어남을 주장한 계몽주의자,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고 모두가 평등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자유가 있다. 이것은 신성한 권리이다. 한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며, 백성들이 원하는 사람들로 나라를 다스리는 정부가 이루어져야 한다.' 루소의 생각이 민주주의의 바탕이 됨 
  • 루소의 생각은 제3계급들의 지지를 받았고 정치에도 참여하는 결심하게 됨, 그리고 제3계급들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지도적인 자리에 올라와 있었으므로 귀족과 성직자들의 세력과 충돌하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됨
  • 프랑스는 영국과 100년전쟁으로 수많은 전쟁에 시달렸고,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미국에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전쟁이 일어나는 시기였고 영국과 미국 독립전쟁에서 미국을 도와 전쟁을 하면서 많은 돈을 지출하며 나라 살림이 엉망이 됨
  • 재무장관 네케르가 귀족들과 성직자들에게도 세금을 걷자고 했지만 반발이 심하자 평민들에게 세금을 걷기로 함, 평민들은 세금을 낼 당사자들에게 묻지도 않고 세금을 물수는 없다고 불만을 토하자 삼부회의(1789.5.5) (1,2,3계급 특권층만 소집)를 소집함, 이전과는 달리 3계급은 실력이나 지식면에서 크게 자란 당당한 세력으로 성장해있었음,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묵살됨, 투표로 이사결정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1,2귀족 300명, 3계급 600명이라 귀족들 반발, 제3계급은 삼부회의에서 떨어져나와 평민들로만 구성된 국민회의(1789.6.17)를 소집함, 국민회의에서 이들은 세금을 내는 대신 권리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주장함
  • 루이 16세는 귀족과 성직자들의 등살에 못이겨 국민회의가 열리지 못하도록 회의장 문을 걸어 잠금, 회의장을 빼앗긴 의원들은 삼부회의가 열렸던 베르사유 궁전의 테니스 코트(죄드폼)앞에서 죄드폼 선언을 하게 됨 

죄드폼 선언

  •  시민의 권리를 지켜줄 헌법을 만들 것
  • 시민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할 것

 

  • 이후 국민의회를 반대하는 세력으로 정부 조직이 바뀌자 시민들은 크게 실망했고, 평민 대표들은 시민들을 선동하기 시작했음
  • 1789년 7월 12일 시민들의 무기고 습격,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 바스티유 감옥에 있는 무기들을 손에 넣고 바스티유를 지키는 수비대를 공격했음, 수비대는 어쩔수 없는 임무 때문에 전투를 하였지만 시민들을 습격하지 않았고 무차별적으로 학살되었음
  • 바스티유 습격에 성공하자 국민의회는 귀족들의 특권을 박탈하고 봉건제를 폐지했음, 헌법을 제정하여 입헌 군주국을 만드는 것을 목표하였음, 8월 26일 프랑스 인권선언 발표(자유, 평등, 권리) 권리-자유와 소유의 권리, 안전 그리고 억업에 대한 저항의 권리
  • 1791년 입헌 군주제 제정, 국민의회 해체, 새로운 헌법에 따른 입법 의회 탄생, 혁명 세력은 온건파(지롱드)와 급진파(자코뱅)로 나뉘게 됨
  • 6월 21일 루이 16세는 혁명 세력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처가인 오스트리아로 도망가려다 들켜 강제로 압송됨, 왕의 탈출 미수 사건은 혁명세력을 자극시켜 왕을 패쇄하고 왕이 없는 공화국을 만들자고 주장함, 프랑스 혁명 사건을 지켜보던 이웃나라들(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영국, 러시아등 동맹국들)도 위협을 느끼고 프랑스에 군대를 보내 혁명세력을 분홰하고 왕실을 구출하고자 함
  • 1792년 4월 20일 프랑스 혁명세력은 반혁명 동맹국에게 전쟁을 선포함, 혁명군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무기로 패배에 패배를 거듭, 혁명 정부는 국민들에게 위기를 선포하고 국민들이 전쟁에 같이 봉기했으며 젊은이들은 의용군에 지원하여 마르세유에서 파리까지 800km를 행군으로 진격해옴, 이 때 부르던 군가 (라 마르세예즈)가 프랑스 국가가 됨
  • 1792년 8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공격 시작됨, 시민들은 왕궁을 습격하여 왕정을 폐지, 왕실에 협조한 귀족 및 성직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처형을 단행
  • 1792년 9월 20일 혁명군이 발미에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연합군을 격파
  • 1792년 9월 22일 왕정 폐지와 동시에 공화국 건설, 새 공화국 창건과 함게 나라를 이끌어갈 국민 공회(1792~1795)가 구성됨
  •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됨, 1793년 3월 귀족, 성직자, 반혁명 인사들과 지롱드파를 처형하면서 자코뱅파의 공포정치가 시작됨, 이때 마리 앙투아네트도 처형됨, 대대적인 처형이 이어지는 공포정치와 함께 그리스도교 탄압도 이루어짐, 성직자를 제 1계급으로 보았음
  • 계속되는 공포정치 동안 불만이 커진 국민들 사이에서는 반발 세력이 힘을 얻음으로써 1795년 지롱드당이 세력을 잡으면서 공포정치가 끝이 남
  • 1795년 10월 총재 정부 수립, 5명의 총재가 공동 통치를 하며 행정권을 지님, 5명의 의견이 갈라져 혼란을 야기하였고 과격파가 불만을 품어 반란을 일으킴
  • 1795년 10월 5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반란군을 진압하고 정권을 잡음, 1799년 11월 9일 쿠테타를 일으켜 총재정부를 무너뜨리고 제 1 통령으로 통령정치를 시작함,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이념을 계승하면서 전 세계에 민족주의 바람을 일으켰음, 유럽통일을 이루어나가면서 1804년 12월 2일 노트르담 성당에서 황제로 등극,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면서 제1제정 시대가 열림
  • 1805년 12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러시아 연합군 계멸시켜 신성로마제국을 멸망시킴,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를 장악했으나 1812년 러시아 정벌에서 실패하고 1814년 퇴위됨, 엘바 섬으로 귀양되었다 1815년 엘바섬 탈출후 군사를 모아 워털루에서 프로이센 , 영국, 네덜란드의 연합군과 전쟁하였으나 패배,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생을 마감
  • 1814년 루이 18세의 등극으로 부르봉 왕조로 다시 복귀, 당시 프랑스는 왕당파, 황제파, 혁명파로 나뉘어 혼란스러웠음, 루이 18세는 입헌군주국 만들어 법에 다스릴 것을 약속
  • 루이 18세 이후 막내 샤를 10세가 왕위를 이음, 절대 왕권을 주장, 반혁명 운동 지휘자였음, 입헌군주제 폐지, 절대 왕저 수립, 정부에 비판적인 잡지 및 간행물 모두 폐기, 의회 해산, 선거권도 세금을 많이 낸 사람에게만 부여 
  • 1830년 7월 파리에서 다시 시민들이 샤를 10세에 대항해 봉기,  유명한 들라크루아 혁명 그림의 배경
  • 국민들에 의해 루이 필리프가 왕으로 선출됨, 헌법 존중, 국민의 왕이라 불림, 하지만 농업 국가라는 생각에 그쳐 산업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에 대한 불만을 사게 됨,
  • 1848년 2월 혁명이 터짐, 루이 필리프 퇴위, 1848년 12월 제 2공화국 탄생, 2월 혁명의 영향으로 도이칠란드와 오스트리아에 3월 혁명이 터짐,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이 번지게 됨
  • 2공화국의 대통령은 샤를 누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1세의 친조카, 외교 실패로 인기가 사라짐, 4년 단임의 헌법을 무시하고 쿠테타를 강행하여 다시 황제로 등극, 그는 크림 전쟁, 이탈리아 전쟁들 유럽 열강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시도, 1870년 국경을 사이에 두고 프로이센과 격돌(보불 전쟁),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랑스에 패배, 프로이센군에 잡혀 황제가 포로가 되는 수모를 당함
  • 1870년 9월 4일 제 3 공화국 탄생, 비스마르크의 도이치 군대가 파리를 정복, 시민들이 나라를 지키려고 전쟁을 이어갔지만 패배,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 거울의 방에서 도이치 제국 성립 선포,  군대 철수를 조건으로 엄청난 배상금 요구, 프랑스는 전국적으로 배상금 물기 운동으로 도이치가 요구한 모든 배상금 상환후 군대 철수(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심사원이 그 기념), 프랑스와 독일 사이 감정이 나빠짐
  • 1871년 3월 28일 노동자 계급의 자치 정부 수립, 프로이센과 전쟁에 진 임시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생김,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 파리 코민 탄생, 제 3정부와 파리 코민은 서로 충돌, 파리에서 시가전 일어남, 사회주의의 영향을 우려했던 이웃나라들(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벨기에, 영국)이 정부군을 지원하여 5월 20일 파리 코민은 항복함, 파리 코민은 첫 공산주의 자치정부로 러시아 혁명에도 영향을 줬음
  • 제 3공화국은 파리 코민 자치정부와 전쟁, 제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차례로 겪으면서 도이치군에게 파리를 점령당하면서 사라짐(1940년 6월 22일), 당시 알프레드 드레퓌스(1859~1935) 사건이 일어나면서 제 3공화국이 흔들렸음   
  • 프랑스군 장교인 드레퓌스는 도이치계  알자스 지방 출신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도이치로 부터 돈을 받고 군사기밀을 팔아넘긴 서류의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게 됨, 1894년 10월 비공개 재판이 열렸고 변호사도 허용되지 않았음, 항의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종신형을 선고 받음, 1896년 진범이 밝혀졌으나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증거가 조작이며 드레퓌스가 범인이라고 주장,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좌익 지식인들이 일어나 다시 재판이 열렸으나 법정은 유죄를 선고하고 10년형으로 감형, 1902년 좌파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1906년 군법회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음
  •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친드레퓌스파는 1898년 인권 보호 동맹을 결성,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테오도어 헤르츨(1860~1904)은 유대인의 나라가 반드시 있어야 함을 주장(시오니즘)하면서 유대인의 나라 책을 펴냄 -> 벨푸어 선언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
  •   1946년 10월 13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프랑스 제 4공화국이 수립됨, 승전국의 하나로 유엔에서 거부권을 행사 가능한 국가가 되었고, 무리한 해외 식민지 전쟁으로 무너짐
  • 1958년 샤를 드골(1890~1970)이 이끄는 제 5공화국 수립, 드골은 2차 세계대전에서 임시 정부 지도자로 나치에 대항해 연합군과 전쟁, 헌법을 고쳐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했고 프랑스 독자주의인 드골주의를 내세워 자존심 강한 프랑스를 만들었음, 나토 가입 거부, 유럽공동체 가입 거부, 핵실험 강행
  • 국내에서 지나치게 권위적인 정치로 인해 1968년 권위와 구시대에 대한 저항으로 노동자, 학생등이 주도한 5월 혁명이 터졌음, 군대 진압으로 실패한 혁명이지만 전 세계에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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