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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분야

[로마사] 고대 로마의 건국

by 베니스상인 2019. 5. 2.

 

로마의 기원

BC 1250경 트로이 전쟁후 알바롱가 도시국가 세움

트로이전쟁에서 패한 트로이 장군(트로이왕 프리아모스의 사위)  "아이네아스" 일족이 트로이를 떠나 델로스섬, 크레타섬, 스트로파데스섬, 에리체(시칠리아), 카르타고를 거쳐 테베라강 유역에 도달하여 정착하여 알바롱가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하였음. 좀 더 상세히 이야기하면 아이네아스는 그리스 동맹군에 함락된 후 이탈리아 반도로 피신하여 그곳에 있던 라티누스 원주민과 정복전쟁으로 승리하고 평화조약을 맺음. 그리고 라티누스의 딸 라비니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새로운 도시의 이름을 라비니움이라고 하였음. 아이네아스 사망후 그의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라비니움을 떠나 알바롱가를 세움.  

 

알바롱가는 고대 로마의 로물루스 신화에 언급되는 지방의 명칭이며 오늘날 로마 남동쪽  30km 카스텔 간돌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알려짐.

https://ko.wikipedia.org/wiki/%EC%95%8C%EB%B0%94_%EB%A1%B1%EA%B0%80

 

알바 롱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알바 롱가(Alba Longa)는 고대 로마의 로물루스 신화에서 언급되는 지방의 명칭이다. 이 지방 이름이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는가 라는 물음은 고고학계에서 한동안 토론되었으며, 오늘날 알바 롱가는 로마의 남동쪽에 위치했던 지방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리비우스의 건국사(Ab urbe condita 1.1-1.3)에 따르면트로이의 장군 아이네아스(Aeneas)는 트로이가 고대 그리스 동맹군에 의해 함락된 후 (→

ko.wikipedia.org

 

BC 753년 로마 건국

알바롱가의 누미토르아물리우스 형제는 상속권을 놓고 싸움을 하였고 동생인 아물리우스가 무력을 써서 우두머리가 된 후 형의 딸 레아 실바아를 신전의 제사장으로 삼아 결혼을 못하게 해서 씨를 멸하려고 하였음. 무녀가 된 공주 레아 실비아는 로물루스레무스 쌍둥이를 낳았고 갓난아이를 제거하라는 아물리우스의 명령을 피하기 위해 시종은 쌍둥이를 바구니에 담아 테베레 강에 띄워 보냈음. 공주는 자살하였고, 아이들은 어마후 강가에서 서성거리던 늑대가 발견하고 젖을 물렸으며 딱따구리가 음식을 가져다 주어 먹고 자랐다고 함. 그리고 어느 양치기가 아이들을 발견하여 데려다가 키웠고 18세 되는 즈음에 양치기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함. 그 후 할아버지를 만나 출생의 비밀을 알게되고 알바롱가를 무너뜨리고 테레베 강 하구 7 언덕에서 도시국가를 건설함. 로물루스는 팔라티누스 언덕, 레무스는 아벤티누스 언덕에 자리 잡았으나 레무스가 경계를 침범한다는 이유로 죽이고 로물루스가 다스리면서 그의 이름을 따 로마라 하였음. 건국일은 4월 21일이며 BC753년이었음.  

 

 

 

 

건국 당시 로마 중부지역은 에트루리아 인이 남부지역은 타란토르(스파르타인), 시라쿠사(코린트인)이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정착해 있었음. 

 

 

 

로마 왕정시대

1) 1대 로물루스(BC753 - BC715)

원로의 추대를 받아 18세에 로마를 건국한 라틴계 왕임. 당시 국정은 왕과 원로 100명으로 구성된 원로원, 민회로 구성되었음. 원로원은 왕에게 조언을 해주는 귀족집단이었고, 민회는 왕과 정부 관리를 선출하고 정책의 가부를 결정하는 일반 평민들의 정치기구였음. 초대 로마는 여자가 부족해서 이웃 부족의 사비니 족을 축제에 초대했고 로마남자들이 사비니 여인들을 강탈하여 아내로 삼았음. 사비니 여인 강탈사건을 통해 몇차례의 전쟁으로 사비니 족을 통합하였고 패자를 로마주민으로 이주시키고 관용을 베푸는 방식으로 세력을 확장하였음. 로물루스는 통치 39년에 사망했는데 기록으로는 군대가 모인가운데 세찬 비바람과 함께 사라졌다고 했음.

 

 

2) 2대왕 누마(BC715 - BC673) 

로마 원로원의 추대로 사비니족의 현자로 손꼽히던 누마가 왕으로 즉위됨. 누마는 전쟁의 신인 야누스 신전을 지었으며 전쟁시에는 문이 열리고 평화시에는 닫혀있게 됨. 누마는 평화체제를 수호하였고 법과 풍습을 개선하고 농축업 진흥에 힘썼음. 시민들을 직업군으로 분류하였고 직업에 대한 긍지도 가지게 하였음. 라틴족ㄱ과 사비니 족의 대립을 막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현명한 처세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통치하였음

 

3) 3대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BC673 - BC641)

샤비니족의 툴루스가 왕으로 선출되고 인근국가인 알바롱가를 정복함. 알바롱가는 로물루스의 할아버지가 세운 국가임. 알바롱가 왕의게 대표자 3:3의 결투로 전투를 하자고 제안해서 승리하였으나 알바롱가 왕은 승복을 거부하고 결국 전쟁으로 승리하여 로마군이 알바롱가를 정복함. 주민들은 로마로 강제이주하였으나 로마시민으로 대우하고 유력자에게는 원로원자리도 마련해줌. 알바롱가의 율리우스 가문도 이때 로마로 들어오게 됨

 

4) 4대왕 안쿠스 마르티우스(BC641 - BC616)

누마의 외손자인 샤비니 족의 안쿠스가 왕이됨. 누마와 달리 평화체제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많은 전투를 하였음. 로마 옆을 흐르는 테베레강에 목조다리를 놓아 바닷가로 진출하여 오스티아 항구를 정복하고 염전도 수중에 넣음. 로마와 바다를 연결하기 위해 도로를 만드는데 나중에 로마가도로 이어짐.

 

5) 5대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BC615 - BC579)

에트루리아인인 타르퀴니우스는 로마최초로 선거를 통해 왕으로 선출되었음. 그는 그리스계 코린트의 부친과 에트루리아계의 모친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며 새로운 곳에서 출세와 개척을 위해 로마로 들어옴. 로마는 민족이나 출생에 관계없이 출세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전재산과 가족을 데리고 로마로 들어옴. 그는 안쿠스 왕의 사후에 유언집행자가 되었고 시민들을 상대로 연설을 통해 민회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왕이 되었음. 원로원을 기반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였으며 로마 7언덕 사이의 습지대를 개간하여 로마의 중심지로 만들고 하수도를 만들어 하천을 개발하였음. 에트루리아 인들은 기술자가 많아 에트루리아 인들을 많이 데려와 고용하였음. 우연히 알게된 소년 세르비우스를 사위로 삼게되고 이후 원로원은 세르비우스를 왕으로 선출함

 

6) 6대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BC579 - BC534)

세르비우스는 로마전체를 둘러싸는 세르비우스 성벽을 건설하여 국가방어에 힘씀. 군제개혁과 선거제도 등을 개혁하였으며, 로마 최초로 인구조사를 실시하였음. 병법을 확립하여 준변국에 대해 연전연승을 거두었음. 

 

7) 7대왕 타르퀴니우스(BC534 - BC509)

5대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손자임. 세르비우스의 딸 툴리아는 남편을 살해하고 타르니퀴우스와 재혼함. 에트루리아인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세르비우스를 암살하였음. 그의 장례식도 금지하고 선왕과 친했던 자들은 모조리 죽였음. 시민들은 그를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라고 불렀음. 그는 군사적 재능이 뛰어나 주변국과 싸움에서 늘 승리하였으나 시민들의 미움을 받았음

 

7대의 왕으로 왕정시대는 끝나고 공화정이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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